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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구제 신록과 연등이 무르익는 5월의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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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조회 0회 작성일 26-05-06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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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구제 영천은 인구 10만이 채 되지 않지만 면적은 서울의 1.5배에 달한다. 땅이 넓으니 품은 풍경도 많다. 그중에서도 5월의 영천은 유독 특별하다. 연등은 부처님오신날을 기다리며 한창 무르익고, 은행나무는 신록으로 빛나고, 보현산댐은 장마 전 맑은 물빛을 자랑한다. 봄의 끝과 여름의 문턱이 맞닿는 이 짧은 계절, 영천으로 떠나보자.
봄이 아직 머무는, 만불사
북안면 고지리에 자리한 만불사는 첫눈에도 예사롭지 않다. 전통 사찰의 고즈넉함을 상상하며 왔다면 적잖이 당황할지도 모른다. 붉고 노란 연등이 하늘을 가득 덮고, 도량 곳곳에 20만기가 넘는 불상이 늘어서 있다. ‘많을 만(萬)’이 붙은 이름값을 한다. 부처님오신날은 오는 24일. 아직 3주나 남았지만 연등 장엄은 이미 한창이다. 5월의 햇살이 연등을 통과하면 종이 안쪽에서 스스로 빛을 뿜는 듯하다. 바람이 한 번 일 때마다 연등이 물결처럼 흔들린다. 도량 한쪽에는 세계 최초로 알려진 황동 재질 와불열반상이 누워 있다. 길이 13m, 높이 4m. 석가모니가 입멸에 드는 순간을 형상화한 것이다. 발바닥에 새겨진 천폭륜상을 세 번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을 얹는다. 만불보전 안으로 들어서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높이 3m의 삼존불이 중앙에 좌정하고, 벽면 가득 금빛 찬란한 일만칠천 원불이 봉안돼 있다. 불자들이 정성을 담아 모신 원불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이름과 발원을 품고 있다고 했다.
만불사의 주인공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아미타영천대불이다. 안내도에 ‘33m 아미타영천대불 가는길’이라 적혀 있는데, 이 숫자를 두고 오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33m면 바로 저기 어디쯤 있겠네”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어르신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3m는 거리가 아니라 대불 자체의 높이다. 게다가 그 발치에 닿으려면 만불보전 뒤편 산길을 제법 올라가야 한다. 계단과 오솔길이 번갈아 이어지는 오르막을 천천히 걷다 보면 5월의 숲 기운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숨이 조금 차오를 즈음 시야가 확 트이면서 아미타영천대불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래에 서서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니 대불의 얼굴이 파란 하늘에 더 가깝다. 어디선가 불어온 산들바람이 이마의 땀을 기분 좋게 식혀준다.
가을보다 빛나는 5월, 임고서원
만불사에서 차로 30분, 임고면에 접어든다. 임고서원은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리는 서원이다. 단풍철이면 입구를 지키는 500년 수령의 대왕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물들며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그러나 5월의 은행나무도 가을 풍경에 뒤지지 않는다. 연두색 어린잎이 펼쳐져 있고, 가지 사이로 햇살이 촘촘하게 내려온다. 단풍의 화려함 대신 신록의 청량함이 서원을 감싼다.
서원 앞에는 개성 선죽교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임고 선죽교가 있다. 태종 이방원에게 피살된 포은의 비극을 상징하는 다리다. 입구의 시비에는 포은의 어머니 영천 이씨가 지었다는 ‘백로가’와 아들의 ‘단심가’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어머니의 훈계와 아들의 대답이 500년을 건너 지금도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서원 건너편 포은유물관에서는 선생의 생애와 충절 정신을 영상과 전시물로 만날 수 있다. 포은이 낚시를 즐겼다 하여 이름 붙은 조옹대에 오르자 서원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옥 기와 위로 연둣빛 은행잎이 겹겹이 포개져 있다. 서원을 나오면 주변에 ‘임고 카페거리’가 조성돼 있으니 여유가 있다면 한옥 너머 커피 한 잔의 시간을 가져보자.
몸과 마음을 돌보는, 영천한의마을
영천은 우리나라 최대의 한약재 집산지다. 보현산과 채약산이 품은 희귀 약초가 이곳으로 모였고, 경주·군위·의성은 물론 안동·봉화·영주의 약재까지 영천으로 흘러든다. ‘영천에 없는 약재는 우리나라에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350년 약령시의 전통을 가진 도시가 2019년에 문을 연 곳이 바로 영천한의마을이다. 한의마을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다. 한옥 여러 채가 유기적으로 이어진 단지 형태. 우리 몸의 장기들이 서로 연결돼 일하듯, 건물들이 저마다 제 역할을 맡고 있다.
1관은 한방유통 중심지로서의 영천 역사를 소개한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약령시의 풍경이 전시물과 모형으로 재현돼 있다. 2관에서는 사상체질을 진단할 수 있다.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체질별 바코드를 받아, 3관으로 넘어가면 나에게 맞는 약재의 효능과 주의할 음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4관은 한방 비누나 한방차 등을 직접 만드는 체험 공간이다. 1만원 정도면 참여할 수 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특히 이곳에 오래 머문다.
한방테마거리를 나와 뒤편 언덕으로 오르면 유의기념관이 있다. 하루 4번 4D 돔 영상관에서 한의학의 발전사를 생동감 있게 만날 수 있다. 여름이 기지개를 켜는 5월 초의 바람이 한의마을에 산뜻하게 불어온다. 한옥 단지 곳곳에는 별주부전의 토끼와 거북이 등 캐릭터 조형물이 숨어 있어 아이들이 보물찾기하듯 마을을 누빈다. 한옥체험관은 2개 동 8객실을 갖춰 하룻밤 묵을 수 있다. 또한 한의마을 내 한의원에서는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몸과 마음을 한곳에서 돌보는 여행지로 이만한 곳이 있을까 싶다.
초여름 호수의 윤슬, 보현산댐 전망대&출렁다리
보현산댐 전망대는 호수와 주변 산세를 가장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시설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오른다. 3층이라지만 실제 체감 높이는 10층. 계단으로 오른다면 164개의 계단을 차례대로 밟아야 한다. 3층 전체가 전망대 카페다. 360도 통창 구조로, 어느 자리에 앉아도 보현산댐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북 뷰 카페 100선에 선정된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다. 햇살이 수면에 윤슬로 부서진다. 호수 건너편 산은 연둣빛과 초록빛이 섞여 그러데이션을 이룬다. 저 멀리 댐을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보현산댐 출렁다리다. X자 모양의 주탑이 별의 실루엣처럼 서 있다. 전망대에서 보는 출렁다리도 근사하지만 직접 건너는 것에 비할 수는 없다.
전망대에서 차로 5분 거리. 2023년 8월 문을 연 보현산댐 출렁다리는 총길이 530m, 길이로는 국내 두 번째지만 주탑과 주탑 사이 중간 교각이 없어 시야가 확 트여 있다. 다리 입구에 서자 바람이 제법 분다. 출렁다리라는 이름대로 발을 내딛자마자 다리가 살짝 흔들린다. 아찔함보다 설렘이 앞선다. 별 모양 전망대 바닥에 서서 360도로 몸을 돌리니 보현산 자락과 호수 전체가 들어온다. 5월 초의 하늘은 장마 전이라 유독 맑다. 바로 옆으로 짚와이어가 지나간다. 보현산댐 짚와이어는 출렁다리 상공을 가로질러 비행하는 구조여서 비명과 환호가 번갈아 들려온다.
다리를 건너면 3㎞의 보현산댐 수변둘레길로 이어진다. 여유가 있다면 둘레길을 따라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자. 5월의 야생화와 새소리가 길동무가 돼준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올 때쯤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일몰 후부터 오후 9시까지는 야간 경관조명이 켜진다. 주탑과 다리 전체가 별빛처럼 점등돼 호수 위 빛의 파도를 만들어낸다.
빛나는 창이 닫히기 전에
5월 초의 영천은 짧고 강렬하다. 만불사 연등의 붉은 물결, 임고서원 은행나무의 연둣빛 천장, 한의마을의 한옥 단지, 보현산댐 호수의 윤슬, 그리고 출렁다리의 저녁 불빛까지. 봄의 끝자락에만 볼 수 있는 풍경과 여름의 초입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가 이 열흘 남짓한 사이에 나란히 놓여 있다. 중순이 지나면 복숭아꽃이 지고, 하순에 접어들면 장마의 서막이 오른다. 봄과 여름 사이 잠시 열린 이 창이 닫히기 전에, 영천으로 떠나보자.

▶장마 시작 전 어서 떠나요
만불사는 입장료와 주차비가 모두 무료이며, 연등은 부처님오신날(5월24일)까지 걸려 있다. 임고서원은 입장료 무료, 포은유물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영천한의마을 한방테마거리는 무료이며, 천연비누 만들기·족욕 등 체험 프로그램과 한옥체험관 숙박은 유료(사전예약제), 매주 월요일 휴관이다. 보현산댐 출렁다리는 입장료와 주차료 모두 무료이며, 5월은 하절기 운영시간(오전 10시~오후 7시)이 적용되고, 경관조명은 일몰부터 오후 9시까지,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주간경향] 뇌병변 장애인 김현수씨(50)의 취미는 캠핑이다. 지난 4월 28일 찾아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빌라, 그의 집 거실 벽에는 전국 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는 지도의 길을 따라 전국을 다닌다. 4월 초에는 장애인 친구들과 휠체어가 들어가는 차량을 빌려 2박3일 강원 삼척에 다녀왔다. 최근에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서울식물원을 찾았다. 평소에는 그를 돕는 활동지원사와 함께 매일 2시간씩 동네 산책을 즐긴다.
지금은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다. 한때 강서구 방화동의 한 복지관에서 컴퓨터 문서 정리하는 일을 하며 월 50만원씩 벌었다.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로 1시간씩 이동하는 일은 고역이었지만, 김씨는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월급과 장애인연금, 기초생활수급비를 아껴 생활했고, 남는 돈으로 A사 주식을 조금씩 사 모았다. 그렇게 모은 주식이 어느새 20주가 됐다. “작년에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대박이 났어요. 수익률이 120%나 돼요.” 거실 벽에 붙은 투명한 아크릴 상자에는 그가 넷플릭스를 통해 보는 애니메니션의 피규어 4개가 진열돼 있었다.
옆에는 인터뷰에는 관심 없다는 듯 고양이 2마리가 심드렁하게 누워 있었다. 김씨가 고양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적적해서 반려동물을 키우기로 했는데, 강아지는 손이 너무 많이 가서 고양이를 키워요. ‘메주’와 ‘콩이’를 키우면서 말이 많아졌어요.”
캠핑과 산책을 즐기고, 투자하고, 반려묘를 키우고, 넷플릭스를 즐기는 일상. 여느 중년 독신 남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다. 그러나 김씨에게 이는 기적에 가깝다. 그는 15세(1991년)부터 44세(2020년)까지 인생의 절반이 넘는 29년간을 경기 김포의 한 장애인요양원에서 지냈다. 장애인시설을 나와 홀로 선다는 것은 그에게 단순한 주거 이동이 아니라 삶의 결정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여전히 많은 장애인이 시설에 머문다. 보건복지부의 ‘2025 장애인복지시설 일람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장애인 장기 거주시설(공동생활가정 제외)은 전국 614곳, 입소자는 2만2510명이다. 장애인들의 기본권과 시설 밖의 삶을 선택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4월 23일 국회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을 통과시켰다. 장애인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명시한 첫 기본법으로, 지역사회 자립생활과 ‘탈시설화’ 지원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규정했다.
하지만 법 조항이 생겼다고 시설 밖의 삶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시설 밖의 삶을 지탱할 주거, 돌봄, 관계, 소득의 기반은 충분한가. 법이 선포한 권리와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주간경향은 시설 밖에서 자신의 일상을 다시 만들어가는 김현수씨의 삶을 통해 그 간극을 들여다봤다.
바깥세상과 끊긴 29년
김현수씨는 또래보다 3년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정확히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던 삼육재활학교(현 새롬학교)의 초등학교 과정이었다. 그곳을 5년 넘게 다니다 졸업도 하기 전인 1991년, 경기 김포의 장애인 거주시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입소했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은 애초 서울 강서구 양천동(현 양천구 신월동)에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이 도시미관과 질서 정비에 나서던 시기, 요양원은 김포로 이전했다. 장애인과 빈곤층을 도시 바깥으로 밀어내던 당시의 흐름과 맞물린 이동이었다.
요양원은 거주하는 장애인이 100명이 넘는 대형 시설이었다. 커다란 방 하나에 장애인 여러명이 함께 지냈다. 남녀 구분도 없었다. 옷을 갈아입을 때도 몸을 가릴 공간이 없었다. 방 안에는 각자의 사물함과 TV만 있었고, 방과 방 사이에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지금도 많은 대형 시설이 이런 구조를 갖고 있다.
김씨는 처음 시설에 들어갔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너무 답답해서 울고 짜증만 냈죠.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가 원해서 들어왔다는 생각에 원망도 많았어요. 그 당시 부모님 입장에서는 시설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요양원은 가족들에게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평생 책임져주겠다’고 약속했다.
지금은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논뿐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어디론가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장애인들은 시설 내 마당을 맴돌다 갈 곳이 없어 입구 앞 향나무 근처에 모여 잡담을 하곤 했다. 사지가 마비된 이들은 바깥 구경도 못 하고 방안에 누워 하루종일 지냈다.
쥐가 갉아먹은 식재료가 식탁에 올랐고, 밤 9시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소등됐다. 그렇게 모두가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김씨는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거나,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발달장애 입소자들이 직원들에게 맞는 일도 잦았다”고 말했다.
시설 안의 시간은 바깥세상과도 단절돼 있었다. 온 세상이 휴대전화를 쓰기 시작한 뒤에도 입소자들은 휴대전화를 가질 수 없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TV를 통해서야 바깥세상이 떠들썩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무렵 외부에서 시설에 전동휠체어 1대를 기부했다. 시설에서는 누가 전동휠체어를 가장 잘 조작하는지 겨뤘고, 김씨가 그 휠체어를 타게 됐다. 그는 그날 전동휠체어를 타고 시설 앞마당을 몇 바퀴나 돌았다고 했다. 가끔 옷을 사야 할 때면 시설 직원들이 떨이 옷을 파는 매장에 데려갔다. 입소자들은 직원들이 골라준 싼 옷을 입었다. 그때는 그 돈이 장애수당 등 자신들에게 지급된 정부 지원금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변화는 우연한 장면에서 시작됐다. 2007년 어느 날, 입소자들이 시설 내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다가 자신들에게 지급돼야 할 장애수당이 다른 곳에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입소자들은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석암재단을 관할하는 양천구청 앞에서, 그리고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농성을 시작하며 세상에 목소리를 냈다.
그해 서울시 감사에서 재단 이사장 일가의 보조금 유용과 장애수당 부정 집행이 드러났다. 기존 이사진은 물러났고, 인권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한 공익이사진으로 교체됐다. 석암재단은 ‘프리웰’로, 재단 산하 요양원은 ‘향유의 집’으로 이름을 바꿨다. 운영 방향도 달라졌다. 시설은 거주인의 자립과 탈시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향유의 집으로 바뀌면서 김씨도 외출이 자유로워지고, 장애수당으로 원하는 옷도 사입을 수 있게 됐다. 김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때 나이키 매장에 가서 트레이닝복을 샀어요. 수당이 많지 않아서 비싼 옷은 못 샀지만요.” 2020년 향유의 집이 자진 폐쇄되면서 김씨는 서울시와 프리웰이 함께 마련한 탈시설 장애인 지원주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금 그가 사는 장안동 집이다.
“여기가 바로 내 집이에요”
지원주택은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마련된 주거 모델이다.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확보한 일반 주택에 탈시설 장애인이 입주하고, 운영기관은 주거 유지와 일상생활을 돕는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사는 빌라 건물 안에서 이웃으로 함께 산다. 생활을 지원하는 코디네이터 사무실도 같은 공간 안에 마련돼 있다. 2025년 기준 서울시에는 10개 자치구에 장애인 지원주택 총 305호가 마련돼 있다. 이 가운데 김씨가 입주한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빌라에는 지원주택 9호가 있다.
지원주택은 현재 서울시에서만 도입된 상태다. 거주 기간은 20년, 보증금은 평균 300만원, 월세는 30만원 안팎이다. 지원주택에 입주한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장애인들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주거급여로 이 월세를 충당한다.
중증장애인에게 활동지원은 필수적이다. 김씨처럼 일상생활 전반에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는다. 정부가 지원하는 기본 활동지원 시간에 더해, 서울시는 탈시설 장애인과 중증 장애인에게 추가 활동지원 시간을 제공한다. 김씨의 경우 기본 활동지원 약 400시간에 중증 장애인 추가 지원 200시간가량이 더해진다. 탈시설 초기 3년간은 추가 지원 120시간도 받았다. 배정된 시간 안에서는 비용 부담 없이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김씨가 지난 6년간 경험한 시설 밖의 삶은 혼자 버티는 삶이 아니었다. 주거와 활동지원, 지역사회 관계가 함께 맞물리면서 비로소 그의 자립이 가능해졌다.
다만 김씨의 자립생활이 지속되려면 중증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일자리가 충분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시가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운영해온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은 오세훈 시장 체제에서 2024년 폐지됐다. 이후 이 사업 모델은 경기·전남 등 다른 광역지자체로 확산됐지만, 정작 서울에서는 사라진 상태다. 시설과 지역사회를 잇는 연결망도 약해졌다. 서울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은 장애인 거주시설을 방문해 입소 장애인을 만나고, 이들이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시설 연계 사업’을 해왔는데 서울시는 2024년부터 이 사업 역시 축소·폐지했다.
폐쇄된 요양원이 있던 지역은 어떻게 변했을까. 프리웰은 시설 폐쇄 후 그 자리에 장애인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짓기로 했다. 국토교통부의 ‘특화형 매입임대주택’ 사업에 참여해 지난해 임대주택 3채(총 28호)를 완공했다. 현재 장애인 가구(총 13호), 아동양육가구(총 7호), 1인 가구(총 8호)를 대상으로 입주자를 모집 중이다. 임대주택의 이름은 ‘여기가(家)’로 지었다. ‘여기가 바로 내 집이에요’라는 의미가 담겼다.
장애인 가구가 입주하는 집은 중증 휠체어 장애인들이 생활하기 편하도록 화장실 공간을 넓히고 문 너비를 늘리고, 문턱을 없앴다. 각 층에는 장애인 가구와 아동양육가구가 섞여 살도록 했다. 공유주방, 커뮤니티실 등 주민들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도 조성했다.
김정하 프리웰 이사장에게 장애인 전용 임대주택이 아닌,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다양한 가구를 위한 임대주택을 만든 이유를 물었다. 그의 답이다. “장애인만 살면 또 장애인들만 모여사는 시설과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서요.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서 이렇게 함께 사는 주택으로 설계를 했습니다.”
장애인의 기본권이 법으로 보장되고 탈시설 전환이 추진되는 지금도, 장애인 거주시설의 인권침해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천 강화군의 중증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의 원장이 여성 입소자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이 권리를 선언했지만, 현실은 아직 그 권리를 따라가지 못한다. 김씨의 탈시설 경험은 한 사람의 독립 서사에 그치지 않는다. 시설 중심의 장애인 복지 체계가 무엇을 빼앗아왔는지, 시설 밖의 삶을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사회에 되묻는다.
스위스에서 인구를 1000만명 이하로 제한하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찬성 여론이 과반을 넘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스웨덴에서는 시민권 취득 요건을 대폭 강화한 법안이 기존 신청자에게까지 소급 적용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 반이민 기조가 제도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위스에서는 다음 달 14일 2050년까지 상주 인구를 1000만명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인구가 950만명을 넘을 경우 정부가 이민·난민·영주권 규제를 의무적으로 강화하도록 하고, 필요시 유럽연합(EU)과의 자유이동 협정까지 폐기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기준 스위스 인구는 약 910만명으로, 외국인 비율이 약 27%에 달하는 만큼 이번 국민투표는 사실상 추가 외국인 유입을 제한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는 반이민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투표가 통과되면 스위스는 세계 최초로 헌법에 인구 상한을 명시한 국가가 된다.
발의를 주도한 것은 극우 성향의 스위스국민당(SVP)이다. 이주민 차별과 배제를 제도화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내 찬성 여론은 확산하는 분위기다. 스위스 여론조사기관 ‘리와스’가 지난 29일(현지시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52%가 발의안에 찬성했고, 반대는 46%로 집계됐다. 지난 3월 초 조사에서 찬성률이 45%였던 점을 고려하면 두 달 만에 7%포인트 상승한 셈이다.
리와스는 이번 조사 결과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 발의안이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지지율이 하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오히려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연방정부와 경제계, 주요 정당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음에도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반이민 정서가 힘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사 결과 SVP 지지층의 96%가 발의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우파 성향의 자유당(FDP)은 공식적으로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지지층 다수는 발의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사회당(SP) 지지층의 16%, 녹색당 지지층의 23%만이 찬성 의견을 보였다.
찬성 측은 취리히·제네바 등 주요 도시의 임대료 급등과 공공서비스 부담 확대의 원인으로 이민자 증가를 지목했다. 반이민 여론 상당수는 스위스가 2008년 솅겐 조약 지역에 가입한 이후 EU 역내 이동이 급증한 데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르셀 데틀링 SVP 대표는 지난달 16일 스위스 일간 타게스 안차이거와의 인터뷰에서 “스위스 사람들이 중국의 토끼 우리 같은 공간에서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주택 부족과 과도한 콘크리트 개발은 좌파와 환경단체도 우려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스위스 정부와 경제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이 조치가 시행될 경우 수십억 프랑 규모의 경제 생산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저출생 상황에서 노동력 부족과 경제 성장 둔화 우려가 큰 데다, 인구 상한제가 시행되면 EU와의 자유이동 협정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웨덴에서도 반이민 기조는 한층 강해지고 있다.
스웨덴 자유보수 연립정부와 극우 성향 정당들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시민권 취득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이민 규제를 핵심 의제로 내세운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새 법안에 따르면 시민권 취득을 위한 최소 거주 기간은 기존 5년에서 8년으로 늘어난다. 최근 3년간 6개월 이상 사회보조금을 받은 경우 불이익을 주는 소득 기준도 새로 도입됐다. 스웨덴어·시민학 시험이 의무화됐고, 범죄 이력이나 부채 여부 등을 포함한 ‘질서 있고 명예로운 생활’ 요건도 강화됐다.
논란은 기존 신청자에 대한 ‘소급 적용’ 문제에서 불거졌다. 스웨덴 의회는 기존 시민권 신청자 약 10만명을 보호하기 위한 ‘전환 규정’ 도입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찬성 146표·반대 147표로 단 1표 차이로 부결됐다.
이에 따라 이미 기존 5년 거주 요건을 충족해 시민권을 신청한 이들도 새 기준을 다시 충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현재 10만명 이상이 스웨덴 귀화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신청 당시 모든 조건을 충족했던 외국 출생 신청자들의 절차가 사실상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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