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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부전치료제구입 [이진우의 거리두기]기본소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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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조회 0회 작성일 26-08-05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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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부전치료제구입 AI 시대 문명사적 전환기에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사회학적 상상력…기본소득 구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다만, 새 사회에 맞는 새 제도로서 기본소득이 아닌기존 복지제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접근 중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기본소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AI 대전환은 우리의 삶과 사회뿐만 아니라 기존의 모든 제도를 바꿔 놓는다. 그 변화의 성격과 규모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울수록 이에 대비해야 할 정치는 언제나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은 결국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심해질 ‘양극화’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자연스럽게 ‘기본소득’ 이념을 소환한다. 당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인공지능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라며 “기업의 초과이익 일부를 국민에게 지급하는 ‘국민배당금’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어떤 정치인은 반도체 산업 호황은 농어민들의 시장 개방이라는 희생과 인내가 축적된 결과라며 “이익 일부를 농어촌에 환원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당연시되는 문명사적 전환기 그 어느 때보다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기본소득 구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새로운 사회적 환경에 부합하는 새 제도로서 기본소득을 논의하지 않고, 단지 기존 복지제도를 확대하는 방편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그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면 할수록 해결해야 할 현실적 목표로부터 더 멀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근본적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현재 시행되는 기본소득 정책을 보면, 우리는 그 방향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다. 많은 국민이 기본소득이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기본소득의 근본 성격과 방향이 과연 제대로 설정되었는지 의심스럽다. 2026년 대한민국 정부는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복지정책으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선정된 인구감소지역 주민에게 1인당 월 15만원(4인 가족 기준 월 60만원)을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하는 이 제도는 농어촌 공동체 유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차원의 지역기반 기본소득 실험이라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시행과 동시에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왜 농어촌 주민만 기본소득을 받아야 하는가?
오늘날 대한민국은 더 이상 농업사회가 아니다. 통계적으로 농림어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6%를 차지하며, 전체 취업자의 5% 정도만이 농림어업에 종사한다. 반면 국민의 대부분은 도시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최근 급속히 성장하는 디지털 산업과 플랫폼 경제에 종사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진행된 산업구조의 변화는 이제 AI 혁명을 계기로 다시 한번 근본적인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특정 지역과 특정 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본소득을 설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더욱이 이미 농어촌은 공익직불제, 농업재해보험, 각종 가격보조, 지역소멸대응기금 등 다양한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영역이다. 농어촌 지역에만 현금성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현금성 지원을 추가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에 부합하는지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정 산업·지역 중심 정책 설계
국가 지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도시에 있다. 인류 산업구조는 일반적으로 크게 세 단계 변화를 경험했다. 첫 번째는 농업사회다. 토지가 생산 중심이었던 시대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농업에 종사하였다. 국가의 부는 곧 농업 생산력이었으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동아시아의 정치철학은 이러한 시대를 반영한다. 농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도덕적 기반이었다. 두 번째는 산업혁명 이후의 제조업 중심 사회이다. 증기기관과 대량생산은 농촌 인구를 도시로 이동시켰고, 노동자 계급이 새로운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이 시기 복지국가는 산업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보험 체계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우리는 세 번째 단계인 AI 기반 서비스 경제로 진입하고 있다. OECD 국가 대부분에서 서비스업은 GDP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한국 역시 서비스업 중심 경제로 전환된 지 오래다. 그러나 AI 혁명은 단순히 서비스업의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생성형 AI와 로봇기술은 이제 화이트칼라 노동까지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시장 전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이 육체노동을 기계화하였다면, AI 혁명은 인간의 인지적 노동을 자동화하고 있다. 회계사, 번역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심지어 법률 전문가의 업무 일부까지 AI가 수행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복지국가는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전체의 구조적 불안정성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본소득 논의 역시 특정 산업이나 특정 지역을 넘어 시민 전체의 경제적 안전망이라는 차원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에는 암묵적으로 하나의 역사적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전통적 사고이다. 조선시대 국가 운영의 핵심 원리는 농업이었다. 토지는 부의 원천이었고 농민은 국가재정을 떠받치는 중심계층이었다. 따라서 국가가 농업을 보호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전략이었다. 그러나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이러한 전제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오늘날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중심은 반도체, 바이오 산업, 금융서비스, AI 산업, 플랫폼 경제와 같은 첨단 서비스 산업이다. 국민 대부분은 도시에서 노동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농업을 여전히 국가 경제의 중심산업으로 간주하는 것은 산업구조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정책적 관성일 수 있다.
관성적 사고 아닌 시민 중심 구성을
물론 이러한 지적이 농업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농업은 여전히 식량안보를 책임지고 있으며, 기후위기 시대에는 환경보전과 탄소흡수라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한다. 농촌 공동체는 국토 균형발전과 문화유산의 보존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농업을 지원하는 이유는 ‘경제 규모’가 아니라 ‘공익적 기능’이어야 한다. 농민이라는 직업 자체를 보호하는 것과 농업이 수행하는 공익적 기능을 보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이다. 전자는 직업 중심의 보조금이며, 후자는 공공재 생산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다. 오늘날 OECD 국가들이 확대하고 있는 공익직불제 역시 이러한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가가 보상해야 하는 것은 농민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환경보전, 생태계 유지, 식량안보와 같은 공익적 활동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농어촌 기본소득 역시 단순히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농촌이 수행하는 공익적 기능과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AI 시대 복지국가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특정 산업을 지원해야 하는가, 아니면 시민을 지원해야 하는가? 농업사회에서는 농업을 지원하는 것이 곧 국민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자를 지원하는 것이 경제를 안정시키는 길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방식만으로는 사회 전체의 위험에 대응하기 어렵다. 서비스업,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자영업, 전문직 모두가 기술 변화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농민, 노동자, 공무원, 군인 등 각각의 집단마다 별도의 복지 체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AI 시대에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 AI 시대에는 사회 구성원이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농촌에 살면서 온라인 플랫폼에서 일하고, 유튜브를 운영하며, AI를 활용한 프리랜서가 될 수도 있다. 직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지의 기준 역시 직업이나 산업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멤버십 자체가 되어야 한다.
농업사회는 ‘농자천하지대본’의 시대였고, 산업사회는 노동이 국가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더 이상 특정 산업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복지국가 역시 산업 중심에서 시민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기본소득 논의도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아랄해(Aral Sea)는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걸쳐 있는 소금물 호수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염수호였다. 수량이 풍부하고 물고기도 많이 살아서 인근 주민들은 대대로 고기잡이를 했다. 그런데 1960년대부터 이 아랄해가 급속도로 말라붙기 시작했다. 당시 우즈베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정부가 목화 생산을 늘리기 위해 아랄해로 들어가는 여러 강의 흐름을 바꿔 물을 끌어다 쓰면서부터다.
1959년 취임한 우즈베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첫 공산당 서기장 샤로프 라시도프(Sharof Rashidov)는 경제성장을 추구했다. 라시도프가 초점을 맞춘 건 목화였다. 그의 재임 기간에 우즈베키스탄은 소련에서 면화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가 됐다. 면화 생산을 위해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란 땅은 전부 목화밭으로 바꿨다.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면화는 ‘하얀 황금’이었다. 실제로 라시도프 재임 기간에 우즈베키스탄은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했으며 이런 위상을 바탕으로 소련에 속한 국가 중에서도 상당한 발언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에 스캔들이 터졌다. 라시도프를 포함한 우즈베키스탄 정부 고위 인사들이 생산하지도 않은 목화의 양을 부풀려 소련 정부에 보고하고 그 대가로 수백만 루블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정부패의 뿌리는 깊었다. 고위 관료 중에는 소련 정부에만 사기를 친 게 아니라 실제 범죄조직과 연루된 인사들도 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우즈베키스탄 범죄율은 최고치를 찍었고 살인, 절도, 폭행은 흔한 사건이 됐다.
그사이에도 아랄해는 계속 마르고 있었다. 1970년대부터 아랄해 북쪽 끝부분 수량이 눈에 띄게 줄다가 1987년에는 북아랄해가 왕관 모양으로 갈라져 남아랄해에서 분리됐다. 남아랄해도 점점 말라 동부와 서부로 갈라졌다. 남동부 아랄해는 2000년대가 되자 완전히 말라붙었고 남서부만 이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느다란 모습으로 남았다.
그동안에도 목화 농사에 사용된 대량의 살충제와 화학비료가 토양에 스며들고 아랄해로 흘러들어갔다.
말라붙은 아랄해는 기후 조절 기능을 상실했다. 인근 지역에 폭풍이 잦아졌다. 그러자 흙에 스며들었던 살충제와 화학비료 등 오염물질이 물이 말라버린 호수 바닥에서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 호흡기질환과 암 발생률이 치솟았다. 목화밭에서 평생 한 번도 일해본 적 없을 고위 관료들이 사기 치고 범죄를 저질러 떼돈을 버는 사이 환경파괴와 부정부패의 대가는 아랄해 주변 지역 주민들이 감당해야만 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지금도 세계 생산량 8위의 면화 대국이다.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전부 목화밭으로 바꿔버린 지가 수십 년이 됐으니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을 찾은 뒤에도 나라 전체가 목화 생산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여름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목화밭 일에 강제 동원돼 농사를 지어야 했다. 학교 단위로 어린이들까지 동원했던 이 국가적인 강제노동은 2021년이 돼서야 근절됐다.
아랄해는 카자흐스탄이 환경회복 활동을 벌인 덕에 2026년 현재 1960년대의 3분의 1 정도로 수량이 복구됐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의 보석’이라 불리던 그 깊고 푸르른 위용은 아직 되찾지 못했다. 토양에 스며든 오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더 큰 문제다.
대한민국이 폭염으로 타오른다. 내 사는 포항은 7월 비가 거의 오지 않아 가뭄 ‘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포항 옆 영덕에는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설 것이라 한다. 벌써 외지인들이 들어와 땅값 놀음이 한창이다.
데이터센터는 물과 전기를 빨아먹고 폐수와 전자폐기물을 내놓는다. 물을 얼마나 써댔는지 미국 뉴욕주는 데이터센터 인허가를 1년간 중단시켰다. 다시 말하지만 포항은 지금 가뭄이다. 아랄해는 말라붙었다. 동해바다는 안전할까?
나라 전체가 어떤 한 가지에 올인하면 그 영향은 좋든 싫든 아주 오래 지속된다. 우즈베키스탄의 목화로는 최소한 실도 잣고 천도 짜고 옷도 만들 수 있다. 물이 전부 마르고 데이터센터만 남으면 우리는 그걸 대체 어디다 쓸 수 있을까?
폭염과 가뭄 속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이 마치 전혀 보이지 않는 양 기후정의가 아니라 AI를, 데이터센터를, 또다시 개발과 건설을 외쳐대는 지금의 한국이 나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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